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팡 3세(1기 TV시리즈) (문단 편집) == 제작 비화 == [[도쿄 무비]]의 사장이었던 후지오카 유타카에게 스탭 중의 한 명이 [[몽키 펀치]]의 [[루팡 3세]]의 첫번째 단행본을 이거 굉장히 재미있다고 보여주면서 루팡 3세의 애니메이션 기획은 시작됐다. [[스기이 기사부로]]도 이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사장에게 직접 말했다고 한다. 원작이 마음에 든 후지오카 사장은 즉시 <주간 만화액션> 편집부를 찾아가[* 후일담으로 이 소식은 어떻게 소문이 들어갔는지 그 날 3시간 후에 [[토에이 동화]]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다고 [[후타바]] 사로 찾아왔다고 한다.] 담판에 들어가서 다음날 애니메이션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후지오카 사장은 나중에 세계 시장을 겨낭한 [[리틀 네모]]를 프로듀스하기도 했듯이 진취적인 기상의 소유자로, 당시의 청년문화에 주목하고 어린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인식의 애니메이션의 시청자 연령층을 높여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도 만들고자 했다. 연출로 배정된 [[오오스미 마사아키]]는[* 일본 위키피디아에선 처음 루팡 3세의 연출 제의를 받은 사람이 [[시바야마 츠토무]]였으나, 그가 [[천재 바카본]]의 제작에 참여한 관계로, 파일럿 필름의 제작에만 그쳐 대신 오오스미 마사아키한테 [[연출]]을 요청했다고 나와있다.] [[인형극]] 연출가 출신이라 작화를 잘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작화감독]]으로 [[토에이 동화]]에 있던 베테랑 [[오오츠카 야스오]]를 A 프로덕션[* 당시에는 도쿄 무비의 하청업체로 실질적인 제작 담당. 나중에 [[신에이 동화]]로 독립.]으로 모셔온다. 당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 주류였던 지라, 루팡 3세를 애니메이션화해도 만화책처럼 생생하게 날뛰는 루팡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원작 만화 인기가 떨어질 거라는 주변의 만류로 난색을 표했던 원작자 몽키 펀치도 파일럿 필름을 본 후 입장을 바꾸었다. 파일럿 필름에서의 루팡 3세 성우는 [[1969년]] 제작한 [[극장판]]용 시네마 스코프 사이즈 버전을 [[노자와 나치]]가, [[1971년]] 제작한 TV판용 표준 크기 버전을 히로카와 타이치로가 맡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스케줄 사정상 출연이 어려워 어쩔수 없이 새 [[성우]]를 뽑게 되며, 오오스미 마사아키는 많은 [[연극]] 무대를 살펴본 후, [[야마다 야스오]]를 지목해 그에게 루팡 3세의 성우를 맡아줄 것을 제안한다. 1971년 10월부터 [[오사카]]의 소재한 [[요미우리 TV]]에서 TV 애니메이션화되어 방송되나, 시청률에서 참패했다(역대 그 시간대 최저 시청률 기록!).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들은 어느 정도 시청률이 보장되는 편([[거인의 별]]은 최고 시청률 30%)이었으나 첫회가 6%를 기록하고 3회가 3%로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조기종영]]도 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3화의 시청률이 나왔을 때 요미우리 TV와 [[스폰서]]는 후지오카 유타카와 오오스미 마사아키를 급히 호출해 그들에게 열렬히 따졌다. 이에 오오스미 마사아키는 항변했고, 후지오카 유타카는 스폰서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재의 상황을 개선해보리라고 답했다. 후지오카 사장은 오오스미 감독에게 작품을 [[어린이]] 시청자층을 겨냥한 연출을 하면 어떨까란 제안하나, 오오스미는 그렇다고 시청률이 오를 확증은 있냐고 답하고 그날로 스튜디오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취재를 거절하기도 했다. 훗날 [[NHK]] 루팡 3세 특집에서 긴 인터뷰를 하면서 속사정을 밝히기는 했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후지오카는 1971년 6월에 [[토에이 동화]]에서 [[신에이 동화|A 프로덕션]]으로 이적해 온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연출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이들은 토에이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직하고, 먼저 이적한 오오츠카 선배가 있는 A 프로덕션으로 옮겨서 [[말괄량이 삐삐]]의 [[TVA]]를 만들려고 추진하고 [[스웨덴]]까지 찾아가서 부탁했는데도 원작자가 허가를 해주지 않아 좌절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뭔 이런 바보같은' 작품을 만들어야하는지 내켜하지 않았지만, 삐삐 기획이 엎어지고 할 일이 없어서 연출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기서도 [[완벽주의|남들 10배로 일해서]], 남들이 안보는 동안에도 하루종일 일하고 [[작화감독]]이 해야할 원화, 동화 체크까지 다 하고 수정 작업까지 해서 오오츠카 야스오는 미야자키가 손댄 것은 자신은 안 봐도 되니 편하게 일했다면서 좋아했다. A 프로덕션 연출 그룹(크레딧에 타카하타와 미야자키의 이름이 안 나온다.)은 성인, 청년 대상의 원작을 순화하여 어린이 시청자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그들이 맡으면서 시청률은 9%로 초반보다 소폭 증가했으나, 끝내 23화로 [[조기종영]]했다. 약 5년 후, 다시 [[루팡 3세(2기 TV시리즈)|신작 애니메이션(2기)]]이 제작된다. 여기 써 있는 내용의 출처는 BS 애니메 야화 루팡 3세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